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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이 땅의 진정한 부흥사 전석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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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이 땅의 진정한 부흥사 전석도 목사
    

한 시대를 풍미한 이 땅의 진정한 부흥사 전석도 목사 
성경중심, 하나님 제일 주의 삶 추구

 


 

마흔에 신학생이 되면서 부흥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전석도 목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을 한결같이 부르짖은 것은
‘성경대로 살라는 것’, ‘섭리는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출발부터 전성기나 다름없었던 그의 부흥사역은
체험적 신앙을 바탕에 둔 간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아직 산하제한이 널리 통용되던 시절, 전석도 목사는 당시로서는 이단아처럼 이를 염려했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인간의 얕은 지식과 방법으로 섣불리 나선다는 것이다.
‘인구가 너무 많다면 주시는 이도 여호와신데 주님이 억제할 것이요, 또 너무 적으면 주님이 조정하실 거’라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렇다. 출산장려정책이 시행될 줄 그때는 몰랐으니까….
새삼스레 이 일을 들먹이는 것은 철저한 성경중심, 하나님 제일주의 삶을 지향해온 전석도 목사의 신앙관을 엿 볼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이 일흔, 일선 목회에서의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사명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을줄 모르는,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 시대의 부흥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직도 20여 단체를 호령하며(뒤에서) 사역의 중심에 있는 그 어른을 만나 사명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검소한 생활
“인생이 뭔지 목회가 뭔지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은데 일흔이 됐어. 아쉬움이 많지…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좀 더 잘 섬겼어야 하는데 싶은 그런 심정이야.”
전석도 목사는 아쉬움도 크지만, 그 보다 더 큰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30여 년 전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자신을 아무 값없이 살려주시고, 부흥사로 세워주신 은혜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감격과 기쁨이  생생하다는 것.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목소리도 늙는데, 성대가 한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게 없어. 시력도 젊은 시절이나 비슷해서 아직까지 안경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지. 이 나이에도 건강 주셔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사람은 모름지기 일을해야 건강하고, 그 삶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전석도 목사는 마지막까지 주님께 쓰임받기 위해 건강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면 조깅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으며, 왠만한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는 또한 검소한 생활자세를 보여주는 일이다.
부흥강사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그는 고급 승용차 보다는 교우들과 심방용으로 사용하는 다인승 승합차를 이용하거나, 기차와 고속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즐겨했다. 주택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검소하다. 새생명을 얻은 이후 그의 철칙 중 하나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집을 두겠다는 의미가 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 시대 부흥사 전석도 목사에게 배워야할 첫째가 바로 검소한 삶일 것이다.

약속 이행에 철저한 삶 
이북에서 11세 때, 월남하여 인천에 정착, 이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전석도 목사는 군 입대까지는 제대로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생업에 뛰어들게 했다. 신문팔이·구두닦이·빵장수·가마니 짜기 등 돈버는 일이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뭐든지 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업가적인 기질을 갖추게 된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목회의 소명도 받고, 기차와 버스,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고교3년 때는 부흥회 인도까지 해 보게 된다. 당시 인천제일교회 담임인 이기혁 목사로부터 총회신학대학 입학을 추천받고, 모든 서류를 다 준비한 상태에서 2~3일 사이에 시험에 들고 만다. 목사를 서언하고 부흥사가 되겠다던 그가 육군대표 육상선수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었다. 국가대표로서 대건 중고등학교 체육 강사가 되고, 사업을 하면서 목사의 소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사업적 성공은 장로가 되어 목사님을 잘 보필하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한다. 주유소 사업이 번창할 수록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중에는 교회 다니던 것 마저 발길을 끊게 되더라는 것.
사업의 성공은 무엇보다 철저한 약속 이행으로 신뢰를 쌓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성실성과 부지런함으로 사업에서는 성공했으나, 목회를 하겠다던 하나님과의 약속은 저버린 채 10년 세월을 보내게 된다. 결국 사업실패, 간암 말기, 알콜중독 등 39세에 사형선고를 받고, 자살시도까지 하다가 청계산기도원에서 성령의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통해 영적 구원을 물론이고 육신적인 병마로부터도 해방된다.
40세, 비로서 그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때다. 약속에 대한 철저한 이행은 그 후 더욱 그의 삶을 이끄는 모토가 되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 모임에서시간에 늦는 법이란 없다. 회원의 의무 감당에 있어서도 솔선수범이며, 개인적인 크고 작은 약속들을 소중히 여긴다. 이는 오늘날 한 시대를 풍미한 부흥사 전석도 목사를 만든 원동력이다.

보수신앙 추구
2007년도 인천기독교보수교단총연합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것은 증경총회장 전석도 목사, 그 어른이었다. 6·25상기 연합성회와 8·15 광복절 기념 성회, 본회의 사무실 현판식 등 한 회기 사업을 진행하는데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전석도 목사가 인천기독교보수교단총연합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보수신앙으로 인천을 복음화한다’는 취지가 자신의 신앙관과 맞기때문이다. 동회의 첫 출발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해온 전 목사는 1995년에는 총회장을 맡아 보수교단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실천하는 일, 즉 본질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교회의 정체현상에 따른 염려에 대해서도 그는 사람의 생각이 앞서는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섭리는 하나님 손에 달려있어. 미리부터 겁먹고, 얕은 인간의 지식으로 미래를 진단하는 것에 나는 반대야. 근심하기 전에 말씀대로 생활하고 있나 먼저 살피고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성경대로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이루시거든.”
마흔에 신학생이 되면서 부흥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전 목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을 한결같이 부르짖은 것은 ‘성경대로 살라는 것’, ‘섭리는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출발부터 전성기나 다름없었던 그의 부흥사역은 체험적 신앙을 바탕에 둔 간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근 받은 한통의 전화는 부흥사로서의 삶에 기쁨과 보람을 주는 일이었다. 아주 오래전 경상도의 봉화교회 부흥회를 가게된 전 목사는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술상을 차려놓은 술주정뱅이 한명을 만난다. 별로 게의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고, 집회는 큰 무리없이 잘 마쳤다. 그때 술을 마시면서도 전 목사의 말에 귀가 솔깃했던지 간증을 끝까지 들었던 그 술고래가 은혜받고 목사가 되어 감사의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이런 일들은 종종 생긴다.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받고 새사람이 되었어요.…”
이것이 30여 년을 한결같이 부흥회를 인도한 이유이며, 생명있는 그 날까지 감당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0여년간 이 사명을 감당해내는데는 무엇보다 최한길 사모의 내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 성향과 기질을 고려해 꼭 맞는 사람을 배필로 주신 것 같아.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나한테 시집오고, 어느날 갑자기 목회자 사모가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참 고마운 사람이야.”

전석도 목사는 슬하에 2남 2녀와 3명의 손녀딸이 있다. 이는 사위 둘이 모두 아들이기 때문이다. 맏사위이면서 장남인 안창천 목사(우리가하나되는교회)는 요즘 평신도사역형교회연구소 소장으로 D3 양육시스템 섬김 세미나 강사로 유명하다. 총신대에서 「평신도 사역형 교회로의 전환을 위한 방안연구」라는 제목으로 신학박사 학위(Th.D)를 받은 안 목사는 이 시스템을 통해 70세가 넘는 노인들까지 평신도 사역자로 만들어 내고 있다. 둘째 노영준 안수집사는 인천신현교회를 섬기고, 모래사업을 하면서 전석도 목사의 목회를 보필하고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외에도 전 목사에게는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들이 다 자식이고 가족이다. 신학생 시절부터 학비로 쩔쩔매는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다. 멋지게 생색내는 명분 좋은 일들보다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고 도움을 주는데 주력해 온 것이 30여 년 세월이다. 지금도 어려운 신학생들을 보면 학비 지원에 나서고,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양식을 나누고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곤한다.
나누는 삶이야 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그 어른의 장점일 것이다.

사역은 계속된다

2년전 부터 전석도 목사는 자비량성회에 눈을 돌렸다. 강사 사례비와 숙소, 접대 등이 부담되어 부흥회 한번 제대로 못하는 미자립, 개척교회에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부흥회를 처음 해 본다는 교회도 있었어. 마음이 아프더라구. 왜 좀 더 일찍 하지 못했나 싶은 자책도 생기고… 그래서 회개했어.”
처음 생각보다 훨씬 자비량 부흥회가 주는 기쁨과 보람이 크다고 말하는 전석도 목사는 누군가 시험에 들까봐 염려하지 않고 이전 보다 더 과감하게 말씀을 증거하게 된다고 전한다. 또 자비량으로 해도 여비라며 사례를 준비하는 교회들이 많은데 그럴때면 그 교회에 헌금을 하기도 하고, 자립된 교회에서 주는 것은 어려운 교역자 돕는데 사용하게 된다는 것.

정식으로 은퇴를 하게되면, 그 이후 이 일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인천기독교보수교단총연합회와 예장합동 부흥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협력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합동 부흥사회는 증경회장들의 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터라 후배들이 일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10여년 전 첫 출발부터 함께 해온 하나사랑기도회에 대한 애착 역시 큰 전 목사는 총재로 섬기면서,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을 위한 기도 모임에 열심을 내고 있다. 하나사랑기도회는 오는 1월 17일 오후 2시부터 국회도서관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갖게된다. 이날 설교는 (사)한기부와 합동부흥사회  대표회장으로 있는 이남웅 목사(혜린교회)가 맡는다.
또한 월드복음선교협의회(대표회장 최형식 목사) 이사장이기도 한 전석도 목사는 본회를 통해 무엇보다 노인복지 사역에 관심을 갖고 이 일을 고무시키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월드복음선교협의회는 최근 교회공간활용 세미나로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초고령시대를 대비한 노인들을 섬기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더불어 아동지도사, 요양봉사원, 장례지도사 등의 교육을 실시한다.
전석도 목사의 사역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독언론사인 크리스챤21세기의 이사장 사역이다. 2008년 창간 20주년을 맞는 크리스챤21세기의 새로운 도약과 발돋움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맺는 말
전석도 목사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폐로 꼽는 것은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물량주의’다. 크고 화려한 교회를 세우는 것도 좋고, 고가의 수입산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무조건 다 기뻐받으실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인지 담임목사의 영광인지, 진실로 교우들이 옥합을 깨뜨리고 있는 것인지, 허영과 욕심인지 믿음의 눈으로 깊이 들여다 봐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주님 앞에 갈 날이 다가올수록 나 자신을 비우는 일에 주력하게 돼.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더 생각하곤하지. 그러다보면 경쟁 보다는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주께서 원하는 삶으로 채워야지.”
전석도 목사는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말한다. 복음은 사랑이고, 그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곧 그것이 사명이라고….   

(글 이수미 기자)


                                                      
                                                      

전석도 목사 약력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베다니신학대학 명예신학박사
·아세아선교신학교 이사장 역임
·동인천노회 노회장 역임
·총회(합동)부흥사회 증경회장
·세계바울부흥사선교협의회 증경회장
·한국노인복지선교협의회 공동회장
·한국개혁신학 이사장
·(사)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지도위원
·인천기독교보수교단총연합회 증경총회장
·국제공항선교협의회 증경회장
·경찰선교협의회 총재
·하나사랑기도회 총재
·국제연합복음선교회 총재
·월드복음선교협의회 이사장
·크리스챤21세기 이사장
·21세기지구촌복음화부흥협의회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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